"큰 별이 떨어진 곳, 강감찬 생가 터를 찾아서"
낙성대(落星垈). 우스갯소리로 다른 지역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낙성대를 대학 이름으로 오해한다는 말이 있다. 이런 농담 섞인 이야기를 들으면 서울 사람들은 슬~쩍 입 꼬리를 올린다. 그러나 방심할 일이 아니다. 왜?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낙성대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낙성대(落星垈)의 한자를 살펴보자. 떨어질 낙(落), 별 성(星), 집터 대(垈). 즉 별이 떨어진 곳을 의미한다. 낙성대는 고려 장군 강감찬의 출생지로서, 그가 출생할 때 이곳에 별이 떨어졌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천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 터가 남아 있을까? 강감찬(948~1031)이 실제로 나고 자랐던 생가 터를 찾아가 보자. 일반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와 도보 10분 내외의 거리에 있다.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강감찬의 출생 설화를 알아보자. 대표적으로 문헌설화와 구전설화가 있다.
《세종실록》과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강감찬을 문곡성(文曲星)의 화신이라 칭했다. 한 사신이 밤에 길을 가다가 큰 별이 인가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사신이 관리를 보내어 그 집을 살펴보도록 했는데, 마침 그 집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다. 사신이 이 아이를 데려다 길렀고 후일에 정승의 지위에 올랐다. 그 아이가 곧 강감찬이다.
이후 송나라 사신이 강감찬을 보러 와서는 “문곡성이 사라진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 별이 어디 있는지 몰랐으나 오늘 공을 뵈온 즉 공이 바로 문곡성이시군요”라고 말했다. 문곡성은 북두칠성의 4번째 별로 문운(文運)을 주관하는데, 강감찬이 과거에 장원급제한 문신으로 이후 문무를 겸비한 장군이었기에 이 별로 표현한 듯하다.
민중에게 전해지는 이야기를 보자. 강감찬의 아버지가 훌륭한 태몽을 꾸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밖에서 99명의 여인을 만나 힘을 모아 100번째에는 집으로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던 중 여우 여인에게 홀려 그동안 모은 정기를 다 주게 된다. 여기서 태어난 자식이 강감찬이다. 여우 자식으로 태어난 덕에 동물과 소통하는 신통력을 얻게 된다.
두 가지 모두 믿기는 어려운 이야기다. 그러나 이로 인해 강감찬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탄생 설화를 알아보는 동안 어느새 생가 터에 도착했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있는 작은 공원(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218-9번지), 이곳에서 강감찬이 태어났다.
강감찬 생가 터는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호다. 강감찬은 거란의 40만 대군을 물리쳐 나라를 구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생가 터에 삼층 석탑을 세웠다. 그러나 이 석탑은 1974년 강감찬 장군을 위한 사당 ‘안국사’를 지어 그곳으로 이전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낙성대 유허비(落星垈 遺墟碑)’를 두었다.
또 주변에는 향나무가 있는데, 여기에도 사연이 숨어 있다. 원래 강감찬과 같이 자랐다고 하여 ‘강감찬 나무’라고 불리던 향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는 서울시 지정 보호수로 관리되어 오다 고사되어 현재 관악구청 로비에 고목(枯木, 죽은 나무)의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 생가 터에 있는 향나무는 강감찬 나무의 존재를 잊지 않도록 이식해 온 것이다.
만약 강감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고 싶다면 낙성대 공원 내에 위치한 안국사로 가길 바란다. 그러나 강감찬을 조용히 떠올려 보고 싶다면 생가 터에 오길 추천한다. 이곳에서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큰 별이 떨어지는 모습과 우렁차게 울어대는 사내아이의 모습, 향나무 주위에서 뛰노는 강감찬의 어린 시절이 그려진다. 이렇게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 이것 또한 강감찬을 기리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