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통기자단] 김시옥기자, "관악구 가볼만한 곳 서울대학교 규장각"
등록일 : 2018.04.25


 관악구에는 찾아 보아야 할 보물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보물을 한꺼번에 많이 볼 수 있는 서울대 '규장각'에 다녀왔습니다.



서울대학교 정문에서 만난 작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네요. 바로 '민주화의 길'입니다.관악 교정에는 길 모퉁이 마다 4,19 기념탑을 비롯하여 민주화에 헌신한 동문을 기리는 추모비가 서 있습니다.서울대학교에서는 민주화를 향한 서울대인들의 열정과 희생정신을 잇고자 민주화의 길을 조성하였습니다.
그 길을 따라 추모비를 순례하면서 민주화의 역사와 희생의 의미를 알아 보면서 걸어도 좋을 듯 합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입니다. 규장각의 흔적은 수원화성, 창덕궁, 강화도에서 만나보았지만 우리동네 관악구에서는 처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규장각은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가 창설한 왕실학술기관입니다.





1776년 정조가 설립한 규장각은 본래 선왕의 어제와 어필을 보관 하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후기 정치,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 하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규장각은 조선과 중국에서 간행된 각종 도서를 소장하고 학식이 뛰어난 정예의 관리들이 소속되어 각종 서적을 편찬하기도 하고 국가의 주요 정책을 마련하는 학문과 정치의 중심기구로 발전하였습니다.규장각에서는 정조임금의 열정을 만나게 됩니다.


세계유산인 [조선왕조실록] [숭정원일기] [일성록]등 7종의 국보와 [대동여지도][ 동의보감][ 용비어천가] 등 26종의 보물이 있고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를 비롯하여 조선왕조 의궤가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연구원은 104종 17,828매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책판 을 보유하고 있습니다.책판을 통해 동아시아와  세계와의 문화교류라는 관점에서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지금은 기획 전시중인 '책판조선의 문화를 새기다'를 전시중입니다.이 전시는 올 한해동안 계속 될 예정입니다.



정조임금 즉위 이후 규장각에는 조선과 중국에서 간행된 각종 도서가 수집 되었습니다. 1781년 [규장총목]이 완성될 무렵에는 3만권의 장서를 갖추게 되었고 1782년에는 강화도에 규장각을 건립하여 어람용 의궤등 중요한 왕실 서적을 보관하였습니다. 이후 영국의 침략으로 약탈을 당하였고 수 많은 침략으로 소실 되기도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초계문신제명록]


이 책은 초계문신에 선발된 학자들의 명단을 기록한 책입니다. 초계문신제도는 30세 이하의 젊은 인재를 재교육 하는 과정으로 초계문신의 이름,출생연도 본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외규장각형지안]


외규장각은 규장외각으로도 불리는데 1782년 2월 강화부 행궁의 동쪽 장녕전의 서쪽에 6칸 규모로 건립되었고 왕실족보와 책보, 지장, 어필, 의궤등의 서적을 보관하였습니다. 지난 겨울에 강화도에서 본적이 있어서 이해가 쉬웠습니다




[어제조훈]


영조가 세손이던 정조를 훈계하기 이해 지은 훈서입니다. 이 책에서 영조는 왕업의 계승의 어려움을 언급한다음  왕손이 안일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부지런히 힘쓰고 세손이 지켜야 할 '오계'와 '오권'을 내린 책으로 오권은 <효도와 우애><학문수련> <유학 숭상><절약과검소> <간언 수용> 오계는 <나태와 안일> <참언 수용><토목공사><형벌과 포상> <근신> 에 대한 경계입니다.



[한중록]


한중록은 교과서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아아야 바늘이여 어여쁘다 바늘이여"로 시작되는 해경궁홍씨의 회고록입니다.
혜경궁 홍씨는 9세때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입궁한후 궁중에서 50여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환갑에 이르러 후일 순조에게 보여줄 목적으로 쓴 글입니다.


[소미통감절요책판]


중국의 역사서 입니다. 동일한 판각처에서 동시에 간행작업을 진행한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필사본에서  판각으로 바뀌게 되어 여러권의 책을 만들 수 있었고 여러사람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제자성편 책판]


영조가 지은 훈서 중 하나인 <어제자성편>의 책판입니다. 책판에는 간기가 없지만 영조 어제류와 마찬가지로 교서관에서 간행했을것으로 생각되며
<승정원일기>에도 교서관 관원이 작업을 주관한 기록을 알 수 있습니다.



책판이 이렇게 생겼습니다. 서울대 규장각에는 여러가지 크기의 책판이 있는데 책판은 이렇게 세워서 보관했네요. 규장각 소장 책판의 간행처는 규장각, 교서관, 시강원등 중앙 관청과 지방관아로 나눌 수 있는데, 중앙과 지방의 책판이 제작 양식이나 목재의 질감등이  많은 차이가 있어서 간행처를 추정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규장각안의 책판들]


규장각 안의 책판들의 간행처를 추적해 보면 책판의 조성 과정이나 활용에 대한 폭 넓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도서관 책판은 거의 모두 영조가 지은 교훈서들로 구성된 것이 특징으로 국왕의 제작에  대해 각별히 관리 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몽선습]


명종때 유학자 박세무가 글을 처음 배우는 아동들의 교재로 지은 책인데 조선시대 동몽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저술로 아이들이 반드시 학습했던 교재였다고 합니다.



[목판과 활자의 만남 어정인서록] 한글과 목판으로 백성과 소통한 영조 '영조어제서'는 왕세자, 왕세손이 관료에게 교훈을 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 되었는데, 목판이나 활자로 만든 것은 후대 왕이나 신하들에게 널리 전파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한문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서는 한글로 번역하여 보급하였는데
영조의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인장도 목판의 일부처럼 판각 되어 있는 책도 있는데 인장 부분만 적색 인주를 사용하여 실제 인장을 찍은 것 같은 느낌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숙종어필목판]


임금님들께서는 한결같이 명필인 것 같습니다. 임금님의 글씨를 보면 절로 감탄이 납니다. 어려서부터 열심히 갈고 닦아 멋진 필적을 이루신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글자가 크고 필획이 웅건해 군주의 기상에 부합하는 필적으로 조선시대 어필 가운데 수작에 해당되는 어필'이라고 합니다.


 



[동국통감]


임진왜란 시기에 약탈된 조선의 역사서입니다.동국통감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제작한 책판입니다.



[정조실록]


1776년 3월부터 1800년 6월까지 정조의 재위기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1800년 순조가 즉위하여 12월에 편찬을 시작하고 1805년 8월에 완성 하였습니다.
조선전기 실록과는 다르게 밀랍이 입혀지지 않은 생지본으로 만들었습니다.




[영조정순후가례도감의궤]


1759년(영조35) 6월에 있었던  영조와 정순왕후 김씨의 결혼 과장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왕비 간택에서 부터 납채(청혼서보내기) 납장(결혼예물보내기)
책비(왕비의책봉) 친영(별궁으로가 왕비 맞이하기) 궁중 잔치등에 이르는 왕실 혼례의 구체적인 절차와 왕과 왕비가 함께 궁으로 돌아오는 행렬을 그린 책입니다.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1895년 을미사변을 살해된 '고종의 비 민씨'를 명성황후로 추봉하고 청량리에 있던 홍릉으로 이장할 때국장 절차와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황후의 능 은 원래 양주 동구능 오른쪽에 조성 되어 있다가 1897년 홍릉으로 바꾸었습니다. 책 말미에는 황후의 장례 행렬을 그린 채색 '반차도'가 실려있습니다.'조선왕조 문화의꽃'이라고 할 수 있는 의궤는 왕실행사나 국가의 사업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정리하여 보고서 형식으로섬세한 그림을 그려 남겨놓은 책입니다.긴 학창 시절동안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요즘 와서야 자주 보게 되는데, 아이들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우리의 역사입니다.



[규장각 세계의 지식을 품다]


정조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는 학술 기구로 출발한 규장각은 나라 밖의 새로운 지식과정보를 담은 도서와 기록물이 모여 있는 세계지식의 집성지 였습니다. 주로 중국의 서적이 많이 수입 되었지만 서구의 학문도 동아시아의 지식 세계에 녹아들어 조선에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정조는 규장각을 창설한 후 조선에서 구하기 힘든 중국도서 구입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정조5년 규장 총목에 따르면 보유하고 있었던 외국 책은 6백여종 2만여권 이었고 대출도 해주었는데 대출이나 열람 할때는 상아로 만든 패 를 사용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대출이란 제도가 있었습니다.



[우암선생후집]


우암 송시열 유고 가운데 왕명으로 간행한 우암선생문집에 빠진 것을 모아 편집한 책으로첫 면에 비상하는 용이 중앙에 있고 정조 임금의 장서인이 있어요
정조임금은 새책을 구하여 볼 때 자신의 인장을 2~3개 많게는 7개를 찍었다고 합니다. 정조가 규장각에 있는 책을 손수 펼치고 찍은 인장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박물관에서는 오래전 역사를 만날 수 있어서 늘 설레지만 정조임금의 수많은 노력으로 지켜낸 책들을 볼수 있어서 좋았습다 규장각은 정조임금을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정조대왕 정말 좋아했는데 정조에 대해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캠퍼스도 예쁘고 박물관,미술관도 있고예쁜 까페도 있어서 친구들 모임 장소로 손색이 없습니다. 우리동네의 명물 규장각 나들이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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