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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소통기자단]이규성기자, 그림으로 읽는 관악 이야기 (1화/3회)
등록일 : 2021.09.01


거란의 침입과 강감찬 장군
고을 아전들은 1년 가까이 다 자란  1미터가 넘는 수수대를 소매 속에 넣을 수가 없어서 쩔쩔 매고 있을 때, 고을 수령인 강감찬이 벼락같이 호통쳤다.
“기껏, 1년도 못 자란 수수대 하나도 맘대로 못하는 네놈들이 감히 20여년이나 자란 내명령을 듣지 않는다면 지금 부터는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 때 부터 부하들은 기가 꺾여서 고을 수령의 지시를 잘 따랐다고 한다.


거란의 1차 침입을 물리친 서희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은 건국 당시 부터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적대시하고, 바다 건너 있는 송나라와 친하게 지내면서 북쪽으로 영토 확장정책을 꾀하자, 거란은 고려를 세 차례나 침공하여 전쟁을 벌였다.
제 1차 침략은 993년(성종12년) 10월에 거란장수 ‘소손녕’이 거란군 십만대군을 이끌고 침공했으나 고려의 외교관료 ‘서희’의 능숙한 외교 담판으로 물리치고, 오히려 강동 6주의 땅까지 획득하였다.



거란의 2차  침입과 ‘강조정변’
거란의 2차 침입은 고려가 ‘목종’왕을 폐하고 ‘현종’왕을 즉위시킨 ‘강조의 난’ 을 트집 잡아서 전쟁을 일으켰으나, 속내는 고려에 빼았긴 강동6주를 되찾고,고려에게 ‘친송정책’을 포기하고 거란을 섬기라는 것이었다.
1010년 11월, 거란왕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다.
고려의 ‘강조’는 사력을 다해 거란군과 싸웠으나 패배해서 거란군의 포로가 되었다.



거란왕은 강조를 자기의 신하로 만들려고 모진 고문을 하였으나 끝까지 거부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강조가 죽고 개경(고려의 수도)이 함락되자, 고려 현종왕은 거짓으로 신하의 예(거란왕에게 절을 하러 가겠다)를 올리겠다고 약속하여 거란군이 철수를 할 때에 고려 장수 ‘양규’가 거란군을 공격해서 7천여 명을 사살하고, 잡혀가는 고려 백성 1만여 명을 구해냈다.



거란의 3차 침입과 강감찬 장군
그 후, 거란은 고려 현종왕이 약속(신하의 예)을 지킬 것과 강동6주를 돌려달라는 두 가지 조건을 요구했으나 거절하자, 1018년에 10만대군을 거느리고 ‘소배압’이 고려를 3차 침입하여 전쟁을 벌였다.
고려왕 ‘현종’은 강감찬을 상원수(총사령관)로 임명하여 거란군과 맞섰다. 이때 강감찬 장군의 나이가 71세로 고령이었다.
‘소배압’은 1차 침입 때, 고려로 쳐들어 왔던 거란장수 ‘소손녕’의 친형이다.
소배압의 10만 대군은 거란의 최정예군으로 사기가 충천하여 노도와 같이 고려를 공격하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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