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껍데기꽃 핀 날>
엊그제 영란 씨와 수종 씨 부부 결혼기념일 때 일입니다.
결혼한 지 27년이 되다보니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결혼기념일이라며 특별히 챙기는 일 없이 무덤덤하게 지나갔습니다.
수종 씨는 오후에 수첩을 보다 뒤늦게 그날이 결혼기념일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구, 결혼기념일인데 어떻게 하지?’
잠깐 고민하다 ‘에이, 그냥 지나가지 뭐’ 하고 말았습니다.
퇴근 후 귀가 길에 오른 수종 씨, 결혼기념일인지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마음이 조금 꺼림칙했습니다.
수종 씨는 안 되겠다 싶어 발길을 돌렸습니다.
조그만 선물상자를 챙겨 집에 온 수종 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영란 씨가 모처럼 수종 씨가 좋아하는 돼지껍데기와 삼겹살을 사와
구울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꽤 비싼 와인도 한 병 준비돼 있었습니다.
돼지껍데기는 수종 씨는 무척 좋아하지만 영란 씨는 입도 못 대는 음식입니다.
가족들이 둘러앉은 저녁식탁, 웃음 섞인 돼지껍데기꽃이 활짝 피어올랐습니다.
■저자 : 신림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