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관악구 지역의 지명을 찾아볼수 있는 가장 오래된 자료로는 ’삼국사기’를 꼽을수 있다. 이책의 지리지 4권 가운데 고구려 지명이 실려있는 35권과 37권에 실려 있는 기록을 보면, 지금의 관악구 지역은 고구려시대에는 잉벌노현,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는 곡양현, 고려시대에는 ’금주’라고 불려왔다. 조선조 태종 13년에는 읍호 개정으로 금천현으로 하였다가 금천과 과천을 합하여 금과현으로 개명되고 두달 후 금양현으로, 다시 태종 16년에는 예전대로 금천현으로 칭하였다. 정조때 수원의 현릉능행 노정이 이 지역을 통과하여 시흥에 행궁이 설치되면서 부터 시흥현으로 부르다가 일제시대에는 시흥군으로 변경되었으며, 해방후 경기도 동면 신림리, 봉천리가 1963년 1월 1일자로 서울시 영등포구로 편입되어 ’관악출장소’를 설치하면서 관악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방행정구역의 이름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1973년 3월 12일자 대통령령 제 6548호로 동년 7월 1일, 지금의 관악구를 비롯하여 동작구와 서초구 지역 일부를 영등포구에서 분리, 별도의 구를 신설하고 ’서울특별시 관악구’로 명명 하면서 부터이다. 2년 뒤인 1975년 10월 1일에는 영등포구와 관악구간의 구간 구역조정을 거쳐, 1980년 4월 1일 대통령령 제 9630호에 의해 관악구 지역의 노량진동, 상도동 등을 분리시켜 동작구를 신설하고 방배동 일원과 사당동 일부를 강남구로 편입 시켰으며 사당동 일부는 관악구에 편입시켜 남현동으로 하였다.
이때 관악구에서 동작구로 분리된 지역은 노량진동, 상도동, 상도1동, 본동, 흑석동, 대방동, 신대방동 일원과 동작동, 사당동 일부 지역이었으며 이후 1988년 1월 1일에는 구로구 독산동 일부가 관악구 신림11동에 편입됨으로써 현재의 행정 구역에 이르렀다.
우리구는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 조례 제1362호에 의해 설치된 남현동과 봉천동, 신림동의 3개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봉천동은 관악산 북쪽 기슭에 있는 마을로 관악산이 험하고 높아 마치 하늘을 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봉천이란 이름을 가지게 됐다.
봉천 중앙시장 부근에 있던 박재궁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은 재궁이 있었다 하여 박지궁 또는 박자궁이라고도 했다. ’재궁’은 지방의 분묘나 무덤을 지키려고 그 옆에 지은 집을 가리키는데 박재궁 뒷산을 넘어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어리골 고개라 불렀으며, 관악로 고개는 살피재 고개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인적이 드물고 해가지면 도적들의 행패 때문에 여러사람이 모여 주위를 살피면서 넘어야 했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1980년 7월 1일 서울특별시 조례 제 1413호에 의해 봉천2동에서 분동되어 봉천10동이 되었고 서울특별시 관악구 행정기구 설치조례(2008. 08.01)에 의하여 2008.09.01부로 중앙동으로 동명칭이 변경되었으며 중앙동의 의미는 봉천지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관악발전의 중심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